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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 오후 10:16:43 입력 뉴스 > 칼럼/사설

신라의 세작이 된 백제의 상좌평
‘위협’을 ‘위협’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



 

적대국가이거나 서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첩보전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베네치아공화국, 로마, 등등의 제국에서의 스파이들의 역할은 물론 소국의 많은 정치인들은 매수되거나 직.간접적으로 스파이가 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역사의 기록에 나타나 있다.

 

 

현대 스파이의 활동 영역은 정치, 경제는 물론 산업스파이 등등 그 범위는 방대하다. ‘요즘 간첩이 어디 있어요?’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스파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대국, 상대편의 정보를 캐기 위해서 언제 어디서든 존재한다. 적의 정보를 빼내거나 역정보를 흘리는 역할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고 또한 그것은 상대편, 상대국에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자왕, 계백, 황산벌, 삼천 궁녀라면 머리에 바로 떠오르는 백제

 

삼국시대의 백제는 세작(細作)이라 불리는 간첩 이야기를 우리 삼국사기에는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백제는 세작(細作)에 의해 두 번이나 망했다.

 

김유신에 포섭된 백제의 상좌평 임자

 

한성 백제가 망한 지 근 200년이 지나서 또 다시 백제는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삼국사기엔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의자왕 19(659) 2월에 여러 마리의 여우가 궁궐 안으로 들어왔는데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上佐平)의 책상[書案] 위에 앉았다’, ‘여름 4월에 태자궁의 암탉이 참새와 교미했다’, ‘5월에 서울[王都] 서남쪽의 사비하(泗河)에 큰 물고기가 나와 죽었는데 길이가 세 장()이었다. 가을 8월에 여자의 시체가 생초진(生草津)에 떠올랐는데 길이가 18자였다’, ‘9월에 궁중의 홰나무[槐樹]가 울었는데 사람이 곡하는 소리 같았다. 밤에는 귀신이 궁궐 남쪽 길에서 울었다.’

 

내용만 봐도 을씨년스럽다. 그만큼 백제 말엽 민심이 흉흉했음을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흰 여우가 사비궁 안에 들어가 상좌평 위에 앉았다는 부분이다. ‘상좌평이라고 하는 관직은 지금으로 치자면 국무총리 같은 자리다.

 

여우가 상좌평 자리에 앉았다고 하는 이 내용을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기록이 있다. 바로 삼국사기 열전편의 김유신전()이다. 김유신 장군이 얼마나 치밀하게 첩자를 이용해 백제를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게 했는지가 매우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이렇다. 조미곤(租未坤)은 태종무열왕 때 급찬으로 천산현령(天山縣令)을 지내다가 백제의 포로가 되어 좌평(佐平) 임자(任子)의 종으로 일하고 있었다. 부지런히 일해서 임자의 신임을 얻었다.

 

백제 좌평(佐平) 임자(任子)는 조미곤의 성실함을 보고 조미곤에게 자유롭게 외부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자 조미곤은 신라로 탈출해 자신의 상황과 백제의 실정을 김유신(金庾信)에게 소상히 말했다.

 

조미곤의 이야기를 다 들은 김유신은 조미곤을 일종의 고정간첩으로 이용할 작전을 구상했다. 그리고 김유신과 조미곤 사이에는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조미곤 당신의 충성심에 나 유신은 너무도 감동했소이다. 신라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하니 한 번 더 당신의 힘을 빌리고자 하오이다.”

 

장군님. 이미 죽고자 각오한 마당에 뭔들 못하겠사옵니까? 장군님의 뜻을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고맙소. 미안하지만 다시 백제로 돌아가서 임자에게 이렇게 전해주시오.”

 

어떻게 말입니까?”

 

나 유신이 백제 좌평 임자와 만나서 상의할 수 있다면 신라와 백제 간에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텐데 그것을 못해서 안타깝다고 전해 주시오.”

 

그렇게만 전하면 되겠사옵니까?”

 

그러자 김유신은 조미곤을 가깝게 오라고 하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신라가 백제에게 망하면 나 김유신을 임자가 보호해주고, 만약 백제가 망하면 임자의 신변은 나 김유신이가 절대적으로 보호하겠다고 말하시오. 그러면 무슨 뜻인지 알 것이오.”

 

조미곤은 대번에 그 뜻이 뭔지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조미곤은 또다시 백제로 돌아가서 백제 상좌평 임자에게 말했다.

 

제가 기왕 (백제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 나라의 풍습을 알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십 일 동안 다니면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개와 말이 주인을 그리는 정성을 억제할 수 없어서 이렇게 돌아 왔습니다.” 임자는 그 말을 믿고 책망하지 않았다.

 

임자의 태도를 파악한 조미곤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번에는 죄를 받을까 두려워서 감히 바른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는 신라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김유신 장군이 전하라고 하면서 저에게 나라의 흥망은 미리 알 수가 없으니, 만일 그대의 나라(백제)가 망하면 그대는 우리나라(신라)에 의탁하고, 우리나라(신라)가 망하면 내가 그대의 나라(백제)에 의탁하기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임자는 이 말을 듣고 묵묵히 말이 없었다.

사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런 적과 내통한 조미곤은 간첩죄로 처벌했어야 했다. 그러나 백제의 내정 책임자 좌평인 임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삼국사기엔 그 다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조미곤은 황송스러워하며 물러나와 여러 달 동안 처벌을 기다렸으나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임자가 불러서 물었다.

 

네가 지난번에 이야기한 유신의 말이 어떤 것인가?”

조미곤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지난번에 말한 것과 똑같이 대답했다.

 

임자가 말했다.

네가 전한 말을 내가 이미 잘 알았으니 돌아가서 알려라.”

그러자 조미곤은 드디어 신라로 돌아와서 백제 좌평 임자의 말을 김유신 장군에게 전했다. 이렇게 백제 최고책임자 중 한사람을 포섭한 김유신은 그 후 적극적으로 백제 공략의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되자 백제 내부에선 백제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충신들의 목소리는 신라에 포섭된 좌평 임자에 의해서 철저히 차단되었다. 그 와중에 백제 의자왕은 나이가 들어서 실제적인 정치를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것을 이용해서 왕자들은 좌평 자리를 독차지하게 되자 백제의 귀족과 왕족 사이는 막을 수 없는 알력이 커져갔다. 그래도 충신은 있는 법이었다. 그 충신이 성충과 흥수였다. 백제를 위해서 바른 말을 하는 성충과 흥수는 신라와 내통하고 있던 임자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성충이 죽으면서도 백제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남긴 말이다.

 

필시 신라와 당이 연합해서 백제를 공격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바다로는 기벌포에 닿지 못하게 하시고, 육상에서는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면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이런 성충의 말은 평화로운 시대를 어지럽히는 말로 매도되어 버렸다.

 

신라는 드디어 백제 공략에 나섰다. 그 중 충신파는 백제왕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신라의 보기 드문 대병력이 이동한다 하옵니다. 좌평 성충과 흥수가 말한 대로 만약을 대비하여 설사 신라가 우리 백제를 공격한다 하더라도 탄현(현재 대전과 옥천을 연결하는 고개)에 진을 치고 있으면 능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이러자 신라 첩자에 포섭된 좌평 임자가 맞받아쳤다.

왜 나라를 소란스럽게 하려 그러는 것이요? 신라가 우리 백제를 공격한다는 증거가 있단 말이요? 이렇게 군사 이동하는 것이 어디 한 두 번 있었던 일이란 말이요? 그리고 우리 백제를 공격한다면 지금 공격하지 왜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단 말이요? 이건 우리 백제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고 고구려에 대항하려는 신라의 속셈이지 백제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니까 너무 호들갑 떨지 마시오.”

 

허허. 그러다가 만약 신라가 백제를 공격한다면 대책이 있소이까?”

실제로 신라군은 백제를 공략할 때 세 갈래 길을 이용했다. 김유신 장군은 백제군을 교란하기 위해 마치 고구려를 칠 것처럼 속이면서 북쪽으로 행군해 갔다. 실제 주력부대는 남쪽길로 우회해 은밀히 백제에 접근하고 있었다. 신라군과 당나라군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백제 내부에서는 입씨름만 하고 있었다.

 

결과는 역사가 증명했다.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의 세작에 의해 두 번 멸망했다. 백만의 적군보다 내부의 세작 한 명이 더 무서운 것이다.

 

신라에 포섭된 첩자의 공작질의 핵심은 위협위협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패망의 지름길이다. 백제는 그렇게 망했다.

 

신라와 백제의 첩보전만 본다면 마치 오늘날 북한은 신라처럼, 대한민국은 백제처럼 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지난 2011년 이후 북한을 다녀온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미국 방문 비자발급을 자유로운 것에서 이제는 미국 대사관에서 까다로운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발급받아야 한다고 발표하였고 현재 시행하고 있다.

 

이는 북한은 테러지원국이며 이러한 나라를 방문한 자에 대해서 제제를 가할 수밖에 없다는 게 미국의 방침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미국이 보는 입장에서는 북한은 위험 국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남한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 백제의 좌평 임자’와 같은 꼴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사천인터넷뉴스(mory2525@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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