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현길언 작가는 “4.3은 그 시작도 정치적이었고, 그 해결 즉 끝맺음도 정치적이었다.”며, 4.3사건이 수단으로써의 이용물로 전락해버린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전혀 알고 있지 않았던 사실들을 알 수 있어 상당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1947년 2월 23일 제주도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의 명예의장은 스탈린, 박헌영, 김일성, 허헌, 김원봉, 유영준 6명을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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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3일 새벽, 무장한 인민 유격대가 제주도 내 경찰관서 12곳을 공격하여 경찰관을 살해하였고, 선거 관계자 및 우익 인사를 테러함으로 사건이 시작되었다.
인명 피해는 지서 근무 중인 경찰관 사망 4명, 부상 6명, 행방불명 2명, 우익 인사와 그 가족 등 민간인 사망 8명, 부상 19명, 그리고 유격대원 사망 2명, 생포 1명이었다.
이날, 무장한 인민 유격대는 우익 인사를 매우 잔인하게 살해했고, 지목했던 당사자가 없을 경우에는 그 노모나 부인이나 어린 아이까지 대신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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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제주사회에서 처음 있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유격대의 잔인성은 공산주의 혁명전사가 되기 위한 사상 교육의 결과였다. 누구도 선거관리 업무나 우익단체에서 활동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전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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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 유격대에서 노획한 문서에 따르면 4.3사건 이후, 그해 7월 말일까지 유격대의 전과를 보면,
(1)경찰에 대한 전과 사항
–지서 습격 31회, 지서 건물 파괴 3동, 지서 소각 6동, 경찰관 살해 74명, 부상 35명, 경찰관 가족 살해 7명, 투항 경찰관 4명, 등,
(2)관공서 습격 및 우익 인사 숙청 상황
-관공서 습격 2회, 관공서 소각과 파괴 각각 1개소, 반동 살해 223명, 부상 28명, 반동 가족 살해 12명, 반동 가옥 소각 120채, 파괴 7채, 경찰관 가옥 소각 2채, 반동 포로 20명, 그 가족 포로 2명, 등
(3)공공 재산 파괴 및 기타 무기 노획 상황
-전선 절단(전봇대 절단) 940개, 도로 파괴 170곳, 교량 파괴 3곳, 기타 무기 노획
현길언 작가는 “4.3사건이 의로운 저항운동이라고 한들 이를 진압한 대한민국 정부를 부도덕하고 반인권적인 집단으로 매도한다고 한들 그러한 논의가 진실 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더구나 이 사업의 결과로 만들어진 제주평화 4.3공원 전시실은 치욕스러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에 저항하는 의로운 4.3항쟁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상생과 화해는커녕 불신과 대립을 만들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이 사건에 대해 정직하게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보다는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해 나갈 것인가?”
“4.3의 비극을 극복하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위무하는 길은 없을까? 이 사건의 실체를 정직하게 규명하고 그에 따라 도민의 아픔을 서로 이해할 때에 가능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4.3을 이해하는 기본 입장이 정립되어야 한다.”며,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반 인권적 사례 때문에 자유민주주의국가 건설을 거부하려는 그 반란의 목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 사건이 반국가적 반란이라 하더라도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반인권적 사실 또한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것이 4.3사건의 실상을 밝히고 그 아픔을 치유하는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고도 기술하고 있다.